내가 좋아하는 것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쭉 나열해봤다.

  • 바다와 나무를 가만히 보고있는 것
  • 유튜브로 노래 오디션 프로그램과 뮤지컬 영상클립들을 보는 것
  • 다 식은 아메리카노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것
  • 요크셔 티(Yorkshire Tea)에 우유와 설탕을 넣고 휘휘 저어 마시는 것
  • 토핑이 들어가지 않은 우롱밀크티
  • 비 오는 날의 따뜻한 사케나 하루를 마무리하며 마시는 맥주
  • 사람이 많지 않은 수영장에서 유유히 수영하는 것
  • 정신이 바짝 드는 0°C의 기온 
  • 불성실하게 외국어 공부하는 것
  • 읽지도 않을 전자책을 아마존에서 사 모으는 것
  • 친구들과 술 마시며 깔깔 웃는 것
  • 반바지 입는 것
  • 모자와 남방, 오래 입어서 정든 겉옷들
  • 프라이탁(Freitag) 가방과 핀 배지들
  • 공복의 기분
  • 살았던 도시들 — 부산, 포르츠하임(Pforzheim), 요크(York) 그리고 서울 —
  • 베를린(Berlin), 에든버러(Edinburgh), 골웨이(Galway), 교토(京都)
  • 쏟아지는 폭우와 그 빗소리를 듣고 있는것
  • 꾸준하고 성실한 삶
  • 짧은 손톱
  • 볶음밥과 카레, 곤드레나물 같은 음식들
  • 독일어의 ch, -tion발음, 중국어의  z, c, s발음
  • 귀갓길 버스에서 듣는 중국노래들
  • 혼자 집에서 보내는 시간

📖 힘 빼기의 기술 (2017)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한국에서 쓴 글과 남미에서 쓴 글. 표지와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산 책인데 글 한 편 한 편이 짧아 술술 읽혔다. 남미에서 쓴 글을 기대하며 읽었는데 외려 한국에서 쓴 글들이 더 좋았다. 고양이와 가족과 친구에 대한 짧은 이야기들을 읽으며 웃기도 했고 조금 눈물이 고이기도 했다. 그런 내가 주책스러웠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책장 넘기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에너지가 많이 드는 콘텐츠 소비를 힘들어하는 요즘의 내가 예전처럼 즐겁게 독서를 할 수 있었다는 점에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든 운동을 하기 전, 몸을 풀려고 하는 가벼운 스트레칭과 같은 책이었고 독서 경험이었다.

힘빼기의 기술 (2017) | 김하나 | 시공사

🎬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 Dawn of the Planet of the Apes (2014)

<혹성탈출 Planet of the Apes> 리부트 3부작 중 두 번째 편으로 적당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3부작 중 가운데라는 것은 시리즈의 첫 편과 마지막 편을 잘 잇는 역할을 해야 할 텐데 시리즈에 자를 대고 잘랐나 싶을 정도로 전체 서사의 위치에서 비율적으로 가운데에 딱 맞는 영화 같았다. 다만, 전작인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 Rise of the Planet of the Apes (2011)>이 가지고 있던 압도적인 느낌이 상대적으로 부족하게 느껴졌다.

진화의 시작이 주었던 참신함과 강력한 힘이 느껴지지 않을까. 나는 이 영화의 시작과 끝 장면에서 그 이유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반격의 서막은 시저의 눈 — 과 눈동자 — 을 줌인하면서 영화가 시작되고 끝나는데 그 장면만 보면 그 눈의 주인이 유인원인 시저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인간으로 보인다. 이번 영화가 그랬다. 시저가 이끄는 무리와 그들의 부락을 보면서 점점 유인원은 유인원으로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바이러스로 지능이 높아졌다고 해도 유인원의 특징이 남아있을 법도 한데 그들은 인간이 가르쳐준 수화로 얘기하고 결국엔 인간의 언어를 발화하며 대화한다. 유인원 고유의 의사소통 방식은 손바닥을 서로 스치며 서로 믿음을 보여주는 것 말곤 등장하지 않는 것 같다. 게다가 모노가미(Monogamy)적 가족을 구성하는 점, 부자간의 갈등 그리고 해소, 동료 간의 신뢰와 배신, 마음이 쓰이는 인간들에게 “도망가(Run)”라고 말하는 클리셰적 장면까지. 유인원만의 특징적인 외모와 현실감 넘치는 그래픽에도 불구하고 단지 인(人)종이 다른 무리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 맥락에서 반격의 서막을 관통하는 내용이자 주제는 두 진형의 데칼꼬마니적 모습인 것 같긴 하다. 시저가 코바를 떨어트리기 직전에 말하는 대사 “너는 유인원이 아니다(You are not Ape)”는 이번 편의 가장 중요한 대사라고 볼 수 있는데, 그 대사 직전에 코바는 “유인원은 유인원을 죽이지 않는다(Ape not kill Ape)”는 시저 무리의 제1 원칙을 말하며 시저에게 목숨을 구걸한다. 그러나 그 원칙을 어기는 유인원 — 코바 — 은 유인원이 아니고 마치 ‘인간’과 같다. 원칙을 깨고 가장 ‘인간(not Ape)’ 같은 모습을 한 코바가 인간에게 가장 학대받은 유인원이라는 사실과 진화의 시작에서 나왔던 인간들의 ‘인간 같지 않아 너무나 인간다운’ 모습 — 약물 실험으로 유인원들을 학대하거나, 철창에 갇힌 유인원들을 괴롭히는 모습 등 — 이 교차하며 ‘인간’은 무엇인지 또 ‘인간성’이란 무엇인지 계속 고민하게 된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로서의 충분한 재미와 이런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반격의 서막이었지만 그럼에도 너무나 인간다운 유인원들을 보며 그렇다면 이 영화가 인간과 인간이 대립하는 다른 영화들과 다를 건 또 무언가 하는 생각이 자꾸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 Dawn of the Planet of the Apes (2014) | 맷 리브스 Matt Reeves | VIA YouTube Movies

🎬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 Rise of the Planet of the Apes (2011)

굉장히 압도적이었다. <혹성탈출Planet of the Apes> 시리즈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다가 얼마 전에 개봉한 리부트 3부작의 마지막 영화인 <혹성탈출: 종의 전쟁 War for the Planet of the Apes (2017)>평이 좋길래 꼭 영화관에서 보고 싶어 첫 편을 우선 봤는데 러닝타임이 가는지도 모르고 정말 정신없이 봤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영장류들의 움직임에서 나오는 속도감이 특히 인상 깊었다. 인간과 다른 움직임과 소리를 내는 그 종(種)의 행동 양태가 영화에 긴박감과 긴장을 줬고 그 덕에 집중할 수 있었다. 요즘 집에서 영화를 볼 때 잘 집중하지 못하는 데 딴짓할 틈도 없이 흥미진진하게 본 게 정말 얼마 만인지…

“인간 똑똑한 영장류 싫어해(Human no like smart Ape)”라는 영화 중 모리스의 대사처럼 너무 인간 같아지는 영장류들의 모습이 무섭기도 조금 징그럽기도 했지만  — 어릴때 MBC에서 즐겨봤던 한 외화 드라마에서도 토끼들이 커져 인간처럼 행동하는 게 너무 무섭고 징그러워서 한동안 공포에 떨었던 기억이 있다 — 스토리가 쉽고 빠르게 진행돼 영화를 보는데 어렵진 않았다. 무엇보다 영화 내내 시저의 존재감이 굉장히 컸고 시저에게 감정이입을 하면서 볼 수 있었기에 내 안의 어떤 거부감을 견디며 끝까지 볼 수 있었다. 시저의 심정변화, 결단 같은 것들이 맥락상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던 점도 있지만 무엇보다 앤디 서킨스(Andy Serkis) 배우가 연기한 시저의 눈빛이나 움직임 같은 것들이 설득력을 많이 더했다는 생각이 든다.

리부트 시리즈의 첫 편인 이 영화는 빠른 속도로 진행되며 사람들이 쉽게 따라갈 수 있게 만들어 오락 영화로도 충분한 것 같지만, 뒤의 시리즈로 갈수록 좀 더 철학적인 고민을 하게 된다고 하니 더욱 기대하면서 다음 편들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아, 뒤의 내용을 대충 알고 있으니 영화를 보면서 ‘기침을 할 때 팔뚝으로 막는 에티켓은 기본 아닙니까!!!’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우리 모두 기침이나 재채기로 바이러스를 전파하지 않는 문명인이 됩시다.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 Rise of the Planet of the Apes (2011) | 루퍼트 와이어트 Rupert Wyatt | VIA YouTube Movies

🎬 덩케르크 Dunkirk (2017)

‘영화가 이래도 되는 건가?’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그리고 계속 들었다. 이동진 평론가가 영화 <그래비티 Gravity (2013)> 을 하면서 ‘어떤 영화는 관람되는 게 아니라 체험된다’는 말을 해서 많은 이들의 공감을 샀는데 이 영화가 그 극한에 서 있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의 스토리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덩케르크 해안에서 펼쳐진 탈출작전’ 정도로 단순하지만, 촬영 기법, 스토리를 엮는 방식, 적은 대사와 배경음악 등이 이끌어내는 몰입도가 상당했다. 서울 왕십리 아이맥스(IMAX) 상영관 한가운데 자리에서 눈에 가득 차는 화면으로 영화를 보고 있자니 그 ‘체험’의 강도가 커졌다. 물에 빠져 도망치지 못하는 장면같이 체험하기에 괴로운 장면이 많았고 조금만 더 실감나면 관람객들이 실제로 트라우마를 겪을지도 모르겠단 생각마저 들었다. 눈에 가득 차는 화면이 가져다주는 몰입도를 경험하며 가상현실(VR)이 더욱 발달한 미래에 영화가 나아갈 길 또한 살짝 엿볼 수 있었던 영화라고 생각한다.

덩케르크 Dunkirk (2017) | 크리스토퍼 놀란 Christopher Nolan | @CGV왕십리 아이맥스관